
불길이 꺼진 뒤에도 없었던 것
1945년 크리스마스 무렵, 웨스트버지니아주 페이엇빌의 소더 가족 집이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날이 밝은 뒤 집은 화재 현장이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조지 소더와 제니 소더, 그리고 열 자녀 가운데 아홉 명이 있었습니다. 부모와 네 자녀는 집 밖으로 빠져나왔습니다.
그러나 다섯 명은 나오지 못했습니다. 모리스 소더, 마사 소더, 루이스 소더, 제니 소더, 베티 소더입니다. 화재 뒤 이 다섯 아이를 다시 보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당국은 이 화재를 사고로 결론 내렸고, 일부 기록은 전기 배선 결함을 원인으로 적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실종된 아이들의 뼈나 유해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불타버린 집에서 다섯 아이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그날 밤, 집 안에는 아홉 아이가 있었습니다
화재가 난 순간, 소더 부부 곁에는 아홉 자녀가 있었습니다. 열 자녀 중 한 명은 그 자리에 없었고, 집 안에 있던 아홉 명 가운데 네 명만 부모와 함께 탈출했습니다. 가족의 밤은 이 지점에서 두 갈래로 갈립니다.
한 기록은 크리스마스이브 밤, 마리온 소더가 일해서 모은 돈으로 동생들에게 선물을 사 왔다고 전합니다. 아이들은 늦게까지 깨어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장면은 단일 기록의 전언입니다.
또 다른 전언에 따르면, 제니 소더는 자정 무렵 낯선 여성에게서 잘못 걸린 듯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어 약 오전 1시, 지붕에 무언가 부딪힌 뒤 굴러가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이 소리와 화재의 관계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불이 시작된 뒤의 행동을 두고도 여러 이야기가 남았습니다. 조지 소더가 불길 속으로 들어가려다 창문을 깨고 팔을 다쳤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 역시 전언입니다. 탈출한 가족이 뒤에 남은 다섯 아이를 향해 되돌아갈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2.5마일 밖의 소방대
불이 난 집과 페이엇빌 소방대의 거리는 약 2.5마일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한 기록은 소방대가 오전 8시까지 현장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적습니다. 그 사이 불은 집을 삼켰습니다.
소방서장 F. J. 모리스는 전쟁으로 인력이 부족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소방차를 운전할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모리스의 진술로 전해집니다.
가족이 훗날 전한 장면은 더 복잡합니다. 가족은 당시 사다리가 제자리에 없었고, 조지 소더의 트럭 두 대는 모두 시동이 걸리지 않았으며, 빗물통의 물도 얼어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기록에는 화재 뒤 사다리가 집에서 23미터 떨어진 둑 아래에 숨겨진 채 발견됐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조지 소더의 사위는 2013년 인터뷰에서, 급히 시동을 걸려다 엔진에 연료가 과다 유입됐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다리와 트럭, 얼어 있던 물에 관한 이야기는 화재 당시 가족의 움직임에 남아 있습니다.
재 속에서 나오지 않은 유해
화재 현장을 조사한 당국은 사고성 화재라는 결론을 유지했습니다. 전기 배선 결함이 원인이라는 설명도 남았습니다. 1945년 12월 30일에는 실종된 다섯 아이의 사망 증명서 또는 공식 사망선고가 기록됩니다.
그러나 조지와 제니 소더는 그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방화와 자녀 납치 가능성을 믿었습니다. 이들의 의문은 화재 현장에서 아이들의 유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출발했습니다.
에이바 페리뇨는 소더 주택이 화재 전에 재배선 공사를 마쳤고 검사관 점검도 통과했으므로, 전기 문제라는 설명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지역 화장시설 직원은 화씨 2,000도에서 2시간 태운 뒤에도 인간 뼈는 식별할 수 있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하지만 이 주장들은 당국의 사고 결론을 뒤집는 공식 판정이 되지 못했습니다. 유해가 없었다는 사실과 사고라는 결론 사이에는 끝내 메워지지 않은 간격이 남습니다. 그 간격만으로 화재 밖의 일을 말할 수 있을까요?
가족이 붙잡은 다른 이야기
소더 가족은 화재 이전부터 낯선 기척이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린 자녀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 낯선 차가 지켜보고 있었고, 한 남성이 화재 무렵 도르래 장치를 훔치고 전화선을 잘랐다고 자백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족은 위협을 했던 보험 판매원과 전화선을 잘랐다는 남성이 시칠리아 마피아를 위해 일했다고 믿었습니다. 조지 소더가 무솔리니를 비판했기 때문에 누군가 아이들을 데려갔다는 것이 가족의 해석이었습니다. 이 해석을 뒷받침하는 공식 결론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보험 판매원으로 묘사된 남성이 검시 배심원 가운데 한 명이었고, 그 영향으로 사고 결론이 내려졌다는 해석도 제기됐습니다. 또한 F. J. 모리스가 유해의 증거처럼 보이게 하려고 상자에 소의 간을 묻었고, 조지 소더와 대면한 뒤 이를 고백했다는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모두 단일 기록에 담긴 주장입니다.
가족은 사설 조사관 C. C. 틴즐리의 도움도 받아 진상을 찾으려 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들은 가족이 왜 공식 결론을 거부했는지는 보여주지만, 다섯 아이가 그날 밤 실제로 어디에 있었는지는 밝히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가족은 무엇을 세상에 남겼을까요?
루트 16 곁의 질문
화재 뒤 조지 소더는 옛집 지하 공간을 5피트의 흙으로 덮어 다섯 아이를 위한 추모 정원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제니 소더는 생애 동안 그곳을 돌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946년 1월 2일 장례식에는 생존한 자녀들이 참석했고, 소더 부부는 너무 큰 슬픔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전언도 남아 있습니다.
소더 가족은 루트 16 인근에 안내판을 세웠습니다. 그 안내판은 약 40년 동안 서 있었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다섯 아이의 사진과 함께, 아이들이 납치됐는지 살해됐는지 혹은 살아 있는지를 묻는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공식 기록은 1945년 12월 30일 다섯 아이의 죽음을 적었습니다. 가족은 그 기록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이들이 사라진 이유를 평생 물었습니다. 사고로 끝난 화재와 끝내 발견되지 않은 다섯 아이, 이 사건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집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다섯 이름은 남았습니다. 불길이 지나간 그 밤, 모리스와 마사, 루이스, 제니, 베티 소더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